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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편지 -21 <머피의 법칙...>
김원중 2002-11-12 12:10:22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를 확인한 다음 심호흡을 한번하고 충무로역 4호선 개찰구를 노려본 후 성큼성큼 다가갔습니다.
물론 오른손에 지갑을 꽉 쥐고서 말이지요.
자동개찰구 위쪽을 ‘쾅’소리가 나도록 지갑을 내리치자 절대 열릴 것 같지 않던 세발인가 네발 달린 바리케이트가 빙글 돌며 나를 끌어들입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더군요.
뒤를 돌아서 지나온 개찰구를 향해 혼자만의 웃음을 지어보며 지갑 속 교통카드를 확인하고 바지 엉덩이에 달린 주머니 속에 지갑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몇일 전의 말도 안되는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던 날을 생각했습니다.

광주쪽에서 음악에 인생을 걸겠다는 후배 3명이 올라온 다음 날의 일이었습니다.
올라온 그날 서울 쪽 음악 수준을 알아보겠다며 동행을 요구한 그 후배들과 처음으로 미사리쪽에 나갔다가 다음날 일찍 광주에 볼일이 있다는 그들을 위해 아침 러시아워에 비교적 영향을 덜 받을 것 같은 수지에 숙소를 정하고 밤새 음악 얘기로 날을 밝혔습니다.
‘머피의 법칙’은 그들이 광주로 떠난 후 차분히 샤워를 마치고 모텔을 나선 순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모텔 종업원에게 물어서 찾아온 버스 정류장 앞 도로는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었는데 차들로 꽉 막혀 있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주차장 같았습니다.
1시간 가량을 매연과 먼지를 마시고 서 있다 보니까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어찌 어찌 버스가 한 대 왔는데 서울 쪽과는 방향이 영 아니었습니다.
수족관 가게에 들어가 물었더니 길 건너쪽이 서울 가는 버스가 있는 정류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길 건너로 갔지요.
역시 아직 정체 중, 버스는 올 기미가 없고......
번쩍!!! 택시를 타고 가까운 전철역으로 가자...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가까운 전철역으로 데려다달라는 말에 돌아온 대답은 수원에서 온 택시이기 때문에 분당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얼굴이 벌개져 씩씩대는 나를 안되었다는 듯이 보던 기사님이 서울 가는 버스가 자주 있는 정류장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500번 버스가 자주 선다는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과연 얼마 있지 않아 1500번 버스가 왔는데 너무 예뻐보였습니다. 버스에 올랐습니다.
“양재 가지요?”
"1500-1번 버스를 타세요”
정말 냉정하게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내렸지요.
한참을 기다리노라니 1500-1인가 하는 버스가 왔습니다.
이번엔 ‘양재’를 확인한 후 올랐습니다.
만원권을 내밀었는데 거스름돈이 없다며 다음 차를 타라고 합니다.
“.....” 눈물이 나더군요.
마침 눈이 보이지 않는 검정 안경을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글썽이는 내 눈을 기사님은 의아하게 바라봤을 겁니다.
책과 CD가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돈을 바꾸러 다녔지요.
10분인가 헤매어 건물 안쪽에 있어, 보이지도 않는 ‘마트’를 찾아 캔커피 하나를 사고 돈을 바꾸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캔커피가 300원밖에 안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와 양재역 확인하고 1600원 버스비 내고 서울을 향했지요.
여기서 끝났으면 나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양재역에 다 온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양재역을 지나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외에서 오는 버스의 정류장은 다른데 있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젊은 승객 하나가 기사님께 ”양재역 아직 멀었나요?“ 했습니다.
“! 방금 지났는데요. 벨을 누르셔야죠.”
‘이런 비여.......영신’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머쓱해서 얼굴도 서로 쳐다보지 못하고 양재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도망치듯 걸어가는 그 사람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양복, 넥타이에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쯔쯔쯔...’ 하고 생각했습니다.

무거운 가방에 늘어진 어깨, 바보이기 때문에 걸음걸이마저 바보 같은 걸음으로 양재역까지 다시 돌아가 전철을 타고 사무실까지 어찌 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사무실 수진이에게 전화했지요.
“차 좀 가지고 전철역으로 와 줄래?”
수진이의 밝은 모습이 위안이 되더군요.
“나 배고프다. 우리 뭐 좀 사가지고 가자”
배고플 만도 하지요. 12시 좀 넘어서 출발한 것이 5시가 넘었으니까요
떡볶이, 튀김, 오뎅 등 사무실 식구들을 생각해서 잔뜩 사고 계산하려 지갑을 꺼냈는데 2000원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까 바꾸었던 잔돈은 호주머니에 따로 넣었는데?’
지갑의 다른 칸에 나를 놀리듯 웃고 있는 2000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대중교통카드... 이제 너만 믿는다.

200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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