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가수의 편지 > 노래산책
 
 
 
 
1994년 1년 동안 전남일보에 '오디오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을 계절별로 재구성하여 묶어보았습니다.
 
 
첫눈 실수 (1)
거꾸로 가는 세상 가수 25시
줄 수 있는 건 사랑뿐 신세대는 하나
가수가 되는 길  
 
 
 

첫눈

어떤 시인은 밤에 내리는 눈의 소리를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 했다.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던 어릴 적 시골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떠 방문을 열면 온통 하얗게 펼쳐지던 경이의 세상. 사랑채 초가지붕 위에, 일직 일어나신 할아버님께서 가로질러 내놓은 길 하나 나있는 넓은 마당에,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동네 앞 들판에도 이렇게 많은 눈이...

밤새 옷 벗는 소리로 요란도 하였건만 잠만 자다니. 지금 사랑채 지붕 위에 설탕을 뿌려 놓으면 며칠 후 처마에 주렁주렁 열리는 고드름 아이스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군대에서 눈은 고통이었다. 수은주가 끝까지 내려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추위에 그 넓은 연병장과 도로의 눈을 치우는 것은 노동이었다.

미우라 아야코의 주인공이 창에 낀 서리를 닦고서 그리로 내다보던 삿포로 역에서 바라본 눈의 세계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중의 하나가 되버린 삿포로의 눈축제는 그야말로 화려한 눈의 잔치다. 휘황한 조명과 엄청난 크기의 눈조각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드는 인파 등으로 눈이 갖는 차분함을 느끼기엔 이미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삿포로에서 전철로 50여 분 거리에 있는 오타루의 눈은 정반대이다. 조그마한 운하가 있고 운하를 따라서 걷는 길가엔 키가 넘게 눈이 쌓여 있고, 어두워지면 켜지는 가로등이 있는 그곳은 연인 없이 찾는 이에겐 차라리 지옥이었다.

첫눈이 오면 공원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던 적이 있다. 그 해의 첫눈은 왜 그리 늦던지... 눈발이 조금 날렸는데 이것을 첫눈이라 할 수 있을까 하고 약속장소로 달음박질하던 것도 눈과 관련된 즐거운 기억이다.

"슬퍼하지 마세요 /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 그때 옛말은 아득하게 / 지워지고 없겠지요/.. / 그리운 사람 올 것 같아 / 문을 열고 내다보네" (<첫눈이 온다구요>, 이정석)

너무 감상적인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
눈 내리는 겨울이 두렵기만 한 분들에겐 정말 죄송하다.

 
 
 
 

거꾸로 가는 세상

나의 경우에 어렸을 적부터 늘 주위에 사람이 많았었다.
성격 자체가 쾌활하고 남들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하고 친하려 하는 사람도 많았고 또 내가 찾아가서 친구하자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참 많아졌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도 아닌데 그렇다. 그래서 최근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외로워 보인다고도 하고,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라고도 하고 심지어는 편협적이다 라고까지 말한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술도 안 먹지, 당구도 못 치지, 바둑 낚시 볼링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흥미를 갖고 하는 게 없다. 그 사람은 혼자 있는 내가 안쓰러워 이것저것 같이 해보자 권하지만 도무지 흥미를 보이지 않으니 이건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꼼짝없이 거만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요즈음의 나는 마치 이조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몇 백년 미래로 와있는 느낌이다. 정신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소리, 자동차 경적, 뻔히 틀린줄 알면서도 악쓰는 대변인소리, 대화 중에 몇 번이고 맥을 끊어버리는 삐삐소리, 다리 무너지는 소리, 가스 폭발음, 뉴스시간에 앵무새처럼 외쳐대는 같은 앵자 돌림의 사람들로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만나는 사람들의 커다란 목소리, 과장된 몸짓은 그 자리에 오래 버티고 앉아 있기 힘들게 한다. 오만과 탐욕으로 가득찬 내 모습을 보고서는 구역질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 네바퀴로 가는 자전거 / 하늘을 나르는 돛단배 / 물속을 나는 비행기 / 한여름에 털장갑 장사 .. / 한겨울에 수영복 장사 /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 오늘도 에드벌룬 떠 있건만 /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땅꾼에게 잡혀온 참새만이 / 날개를 접는다 / 태공에게 잡혀온 독사만이 / 긴혀를 내민다. (양병집의 逆)

차라리 물구나무를 하고서 세상을 바라보면 좀 더 편안하게 보일까.
이러다가 이 세상에서 고독한 사람을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살다가면 어떡하지?

 
 
 
 

줄 수 있는 건 사랑뿐

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지구촌의 축제가 한창이다.
말먹이통에서 태어난 가난한 아이, 중죄인을 처형하던 십자가에 달려 33세의 짧은 생을 마감해버린 그 예수의 생일에 온 세계는 왜 이렇게 법석일까? 이 요란법석은 진정 예수의 생일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일까?

일본에선 크리스마스에 호텔방을 예약할 수 있어야 능력있는 남자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이미 1년 전에 모든 호텔의 예약이 끝난다고 하니 생일 축하치고는 묘한 축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어둠에 묻힌 밤 ... 아기 잘도 잔다 / 아기 잘도 잔다" 아기가 깨어버리면 어떡하나...

한번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들킨 여인을 붙잡아 예수 앞에 데리고 왔다. 그 때까지 통용되던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경우에 돌로 쳐서 죄인을 죽이도록 돼있었다.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는 많은 무리들 앞에서 예수는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더니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고서는 다시 땅바닥에 무엇인가 썼다. 많은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한명씩 슬금슬금 다 빠져나가버렸다.

예수는 땅바닥에 무엇이라 썼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 여인을 위하여, 자신들도 죄인이면서 다른 죄인을 벌하려 드는 저 무리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쓰지 않았을까?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가 만약 가수였다면 분명 이 제목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준 사랑은 화려하지도, 수사적이지도 않다. 자신을 낮추고 목숨까지도 주는 그런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마스캐럴은 사랑이어야 한다.
요즘 불리는 새로운 캐럴들에는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
부딪치는 술잔과 묘한 사랑을 나누는 호텔방에서 쫓겨난 예수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알몸으로 추운 곳에서 떨고 있지나 않을까?

 
 
 
 

가수가 되는 길

"어떻게 하면 가수가 되죠? 우리 아이가 노랠 아주 잘 하는데 가수를 시켰으면 해서요"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이제는 연예인 되는 것이 아이들의 가장 큰 소망이라고 한다. 물론 부모들도 가능성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하는 것 같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노래만 잘하면 누구나 다 가수다.

"어떻게 하면 가수가 되죠?" 이 물음 속에는 어떻게 하면 '인기가수'가 될 수 있느냐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있다. 인기가수는 어떻게든 자신의 노래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들어주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레코딩이다. 카세트 테이프, LP, CD 등이 이 레코딩을 통해서 나오는 것들이고. 그래서 가수가 되려면 레코딩을 통해서 자신의 음반을 갖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레코딩을 하고 음반을 갖게 되는가?
첫째, 자기 자신이 돈을 들여 제작을 하는 것이다. 백영규나 정태춘이 이런 경우의 대표적인 가수라 하겠다. 문제는 이 레코딩 과정에 수천만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는 데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가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특별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싶은 마음에 가수가 되려고 음반을 만드는 골 빈(?)경우를 실제로 보기도 했다. 이런 경우 가수라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자신이 돈을 들여서 음반을 제작하는 경우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둘째는, 레코드사나 개인 제작자(PD 메이커)가 가수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가수는 제작자의 의도에 의해 철저히 상품화된다. 조용필이나 신승훈, 강수지 등 대부분의 가수가 이 경우에 속한다. 많은 가요제가 가수의 등용문이 되는 이유는 레코드사나 제작자들이 투자가치가 있는 값싸고 질좋은 상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가 되는 것,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매우 어렵다. 가수라 해서 다 가수는 아니다. 가수는 노래로 얘기한다. 어떤 길보다도 고통스러운 길이 가수의 길이다. 겉의 화려함만 보고 이 길에 뛰어들어 계속해서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면 대개는 실패하게 된다.

 
 
 
 

실수(1)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아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 보며 그냥 웃으며 지난일들을 얘기하기도 하지마, 그날만은 얼마나 끔찍하였던지...
사실 TV 생방송이란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PD를 비롯한 스태프들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출연자들도 애를 먹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저녁 7시 경에 생방송이 시작된다면 적어도 낮 12시부터는 스튜디오 주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두 세차례 약식 리허설을 하고 나면 마지막 총 리허설이라는 걸 하게 되는데 이때는 실제 방송상황과 거의 똑같이 진행하게 된다. 의상 분장 조명 무용단 악단 등이 총동원된다.

한주 전에 비해 몇 계단 상승한 <바위섬>으로 가요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 전부 엎드려 있고, 나는 무대 위쪽으로 전주를 들으며 서서히 걸어나온다. 엎드린 무용수 사이를 지나서 내 위치에 서게 되면 무용수들이 서서히 일어나며 환상적인 춤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총 리허설이 끝나고 차 한잔 마시고 드디어 생방송에 들어가게 되었다. 카메라를, 마치 나를 겨누고 있는 대포처럼 느끼며 무대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리허설 때 없던 '스모그'라 불리우는 연막을 잔뜩 퍼부어 놓은 게 아닌가? 엎드려 있는 무용수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돌아갈 수도 없고, 방법이 없다. 오직 전진뿐!
서너 발자국쯤 나갔을까? '물컹'하는 발밑의 느낌과 함께 귀를 찢는 비명소리. 무용수의 아름다운 손을 짓밟아버린 것이다. 물론 이 비명소리는 연주소리에 묻혀 나 이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노래를 마쳤는지, 그 무용수는 어떻게 춤을 췄는지, 여하튼 4분2초의 시간은 흘렀다.

사과를 하려고 어쩌면 손가락이 짓물러졌을 무용수를 찾아서 무용수 대기실 문을 열었다.
악! 또 실수! 봤다. 봐도 너무 많이 봤다. 못된 놈, 해삼, 멍게, 말미잘이 되는 건 인격과 하등 관계가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녀들은 다음 곡 준비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날더러' 땡 잡았다고들 한다. 그러나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본 사람이, 본 만큼 손해라는 걸.

 
 
 
 

가수 25시

'10분만 더 일찍 출발할 걸'
장거리 공연을 갈 때마다 거의 매번 하는 혼자의 푸념이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장거리 공연을 다니면서 한번쯤은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이 과속할 수밖에 없고... 그리고 여지없이 검은 선그라스를 낀 교통경찰과 반갑지만은 않은 인사를 하게 된다. 이런 경우 개그맨들은 스티커를 끊게 되면 개그맨 자격이 없다고들 얘기한다.
이홍렬이 걸렸다. 차에서 점잖게 내린 이홍렬. 예의 자신의 우스운 표정을 지으며 교통경찰관 어깨 위에 자신의 머리를 살며시 기대곤 "죽여주십쇼" 한다. 스티커를 끊었는지는 알 수 없다.

김학래의 신인시절 얘기다. 역시 걸렸다. 운전석 유리창을 내리고 손을 모아 아저씨 귀를 향해 가만히 "아저씨, 저 가수 김학랜데요" 라고 했다. 지나가는 차소리 때문에 잘못 알아들었는지 아저씨께선 "뭐라고?" 되물으셨다. 역시 작은 소리로 "아저씨! 저 가수 김학래에요" "뭐! 가수 지망생이고 뭐고 필요 없어. 어서 면허증 내놔!"

나도 많은 위반을 하는 경우다. 두 번째 독집 앨범을 발표했을 때다. 매니저의 아이디어로 승용차에 이름과 노래제목을 써 붙이고 다니던 적이 있었다. 광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장성쯤이었을까? 위반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패트롤 카가 쫓아오며 차를 세우란다. 시간에 쫓겨 도망치기로 마음먹고 밟았다.

그러나 오르막길에서 원수 같은 (?) 트럭이 앞을 막는 바람에 잡히고 말았다. 뭣 때문에 잡느냐고 따져 물었다. 교통경찰 아저씨 빙그레 웃더니 "누가 김원중이야?" "전데요" "야 임마! 내가 니 고등학교 선배다" 후배 중에 가수놈이 있다 해서 보고싶던 차에 차에 적힌 이름을 보고 필사적으로 쫓아온 것이란다. 물론 그날은 스티커를 끊지 않았다.

어느해 가을, 전날 부산 공연에서 받은 꽃다발을 가득 싣고 서울로 달리는 길이었다. 라디오에서 오늘이 경찰의 날이라고 한다.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나를 잡는 경찰관 아저씨께 이 꽃다발 한아름 드리며 "생일축하합니다"노래를 불러줘야지. 이렇게 즐거운 위반이 있을까?' 그러나 서울 도착할 때까지 한 대의 패트롤카도 한 명의 경찰관도 만나지 못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던 오른발만 뻐근해오고 눈은 충혈되고.

 
 
 
 

신세대는 하나

귀에 거는 건 귀걸이, 코에다 거는 건 코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눈썹 옆에 다는 건 뭐라고 해야 하나? 심지어는 너댓개를 줄줄이 눈썹에 꽂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머리카락을 색색으로 물들이고 다니는 아이들, 가죽옷을 즐겨입는 아이들, 물론 청바지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동경 신주쿠의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몰골들이다.

이들을 보면서 나는 일본에 있다는 느낌을 거의 가질 수 없었다. 쉽게는 아니지만 충장로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서울 번화가에선 어렵잖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TV 만해도 그렇다. 언어만 다를 뿐 몇 사람의 공동 MC가 나와서 쉴 새없이 떠들고 박장대소하는 모습들이 어쩌면 서울이 나와 같이 동경으로 옮겨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들이 서양의 뮤직비디오, 영화를 통해서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들이라는데 '섬뜩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고방식, 행동의 자유스러움, 옷차림 등 그들의 연령층에서 세계는 이미 통일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정보통신 분야의 발달, 특히 비디오를 통한 이 분야의 발달을 가장 폭넓게 이용하는 층이 이들이 아닐까 싶다. 마이클잭슨의 AMERICAN AWARDS 공연실황이 위성을 통해 동경에 생중계 되고 동해상에 떠있는 일본 위성을 통해 서울에서도 바로 실황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미 마이클잭슨은 미국이 아닌 이역만리 먼나라에서도 동시에 우상이 된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이념, 종교, 국가, 민족 등 이전 세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들이 부정되어지고 또는 희석되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어쩌면 글로벌 빌리지(지구촌락)의 개념을 거부감 없이 아주 쉽게 터득한 것 같다. 전세계적으로 같은 연령층끼리의 연대감이 점점 확산되고 끈끈해 지는 것 같다.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이 속한 지역문화, 행동양식을 가졌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다.

기성세대와 이 거칠 것 없는 신세대와의 갈등이 조율되지 못한다면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마지막 전쟁은 이 두 세대간의 싸움일지 모른다.
'섬뜩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다.

 
 
무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