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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과 2006년에 있었던 일본공연을 모았습니다.
뜨거운 성원속에 막을 내린 일본공연의 그 생생한 현장을 사진과 공연 동영상으로 만나보세요.
 
 
2005 일본 스케치1탄
2005 일본 스케치2탄
2005 일본 스케치3탄
2005 일본 스케치4탄
2005 일본 히로시마 공연 스케치 1탄 - "생명의 하모니"
2005 일본 히로시마 공연 스케치 2탄 - "Human Festa"
일본 공연기
 
 
 
일본 공연기
 
김원중의 일본 “아시아의 바람” in 하코다테 & 히메지 콘서트 (1)
 
김원중의 일본 “아시아의 바람” in 하코다테 & 히메지 콘서트 (2)
 
일본 “아시아의 바람” in 하코다테 & 히메지 콘서트 (3)
 
김원중 일본 공연기 (4)
 
김원중의 일본 공연 이야기.. 마지막...(5)
 
 
 
 

김원중의 일본 “아시아의 바람” in 하코다테 & 히메지 콘서트 (1)

글: 이언숙

폭염 가까운 무더위에 몸 건강히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지난 7월 초에 일본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참 기분 좋은 공연 일정이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통역을 위해 저와 함께 해준 이언숙씨께서 "공연기"를 써서 보내주셨는데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렇게 행복편지 띄웁니다. 다섯 번에 나누어 보내드릴 "공연기"를 글과 사진으로나마 함께 하시지요.

<일본 “아시아의 바람” in 하코다테 & 히메지 콘서트>

2004년 아시아 민중음악 교류를 위해 일본 도쿄노음(東京勞音), ALLA연대 위원회, 일본 우타고에 전국협의회가 협의하여 일본 오키나와, 도쿄 “아시아의 바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어 올해 2005년에도 일본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와 효고현 히메지에서 두 번째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의 중심에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가수 김원중 씨가 있었다.

2004년의 첫 “아시아의 바람” 공연에서 김원중 씨는 일본에서 열리는 공연이었지만 당당히 공연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음악인이었다. 그! 의 멋진 엔딩 공연은 객석에 자리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울리면서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1998년 일본 우타고에 창립 50주년 기념제전에 프로젝트 그룹 “삶, 뜻, 소리”의 멤버로 일본에 처음 초대된 김원중 씨의 음악을 접한 일본의 많은 팬들이 “아시아의 바람” 공연에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김원중 씨를 초대해 줄 것을 강력하게 원하였다는 말을 일본 우타고에의 국제교류 담당자이신 고바야시 히카루 씨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김원중 씨의 음악을 다시 듣고자 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다시 이번 하코다테 공연으로 이어졌다. 2004년 “아시아의 바람” 공연을 본 하코다테 음악감상협회(줄여서 음감) 관계자가 2005년의 공연을 제안하였던 것이다. 하코다테가 위치한 홋카이도는 김원중 씨에게 개인적으로도 좋은 여행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고 하며 그러한 가운데 하코다테 공연 준비는 원활하게 진행되어 마침내 2005년 7월 3일(일) 장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일본을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 하네다 공항으로 들어가 입국 심사를 받던 중, 아니나 다를까 튀는 헤어스타일에 강한 눈빛을 한 김平씨에게 입국 심사관의 이어지는 질문들. 입국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라든가, 머무는 곳을 좀 더 정확하게라든가, 초청 단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전화번호도 정확하게라든가. 후유, 마음 같아서는 거기 써있잖아요 하고 싶지만, 그럼 안 되지 싶어 구두로 다시한번 설명을 한다. 결국 OK!! 입국 허가 도장 꾹! 통과.

마중 나와주신 일본 도쿄노음(東京勞音) 대표 우에다 가즈시게 씨와 무사히 합류를 하여 하코다테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국내선 공항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 하코다테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요란한 비행기 한 대를 만났다. 만화 주인공 피카츄가 비행기 전체에 그려진 웃음을 짓게 하는 비행기였다. 으와, 저런 비행기를 대체 누가 타냐? 하며 우리 일행은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라, 근데 이게 웬일. 바로 우리가 타고 갈 하코다테 행 Air Do가 아닌가! 하하하.

하코다테는 맑았다. 저무는 부드러운 햇살과 살갗에 닿는 상쾌한 바람의 감촉은 마음까지 간지럽혔다. 장마가 없다는 홋카이도여서 인지 7월에 느끼는 초가을 느낌이었다.
하코다테 공항에는 하코다테 음감의 멤버와 관계자들이 마중을 나와 주셨다. 사무국장이신 가지와라 야스오 씨를 비롯한 여섯 분이 <안녕하세요(한글) 金元中さん>라는 프랭카드를 들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 곳에서 만나는 한글이 반가웠다.

 
 
 
 

[공연기] 김원중의 일본 “아시아의 바람” in 하코다테 & 히메지 콘서트 (2)

도착하여 처음 들른 곳은 백만불짜리 라는 하코다테의 야경을 볼 수 있는 하코다테야마.
맑은 날씨에 고무되어 신나게 로프웨이를 타고 산에 올랐다. 어라, 그런데, 갑자기 몰려드는 구름떼. 흩날리는 빗줄기. 완전히 구름에 포위되고 말았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백만불짜리 야경은. 하코다테 음감의 가지와라 사무국장님이 너무나 안타까워하자 이 때 김원중 씨가 던진 한 말씀. “눈으로만 야경을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마음으로 보면 볼 수 있는 법. 나는 이미 하코다테의 백만불짜리 야경을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다시 로프웨이에 올라 구름을 뚫고 내려오니 순간 다시 눈앞으로 다가온 불빛들. 산 정상에서 보는 만큼 아름답지 않을지라도 그 불빛들의 자태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이동. 이동하여 간 곳은 다름 아닌 가지와라 사무국장님의 댁. 부인 세이코 씨께서 직접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일본의 일반 가정에서 맛보는 식사였다. 김원중 씨가 오징어를 매우 좋아한다는 말이 대화 중에 나오자, 하코다테가 오징어 산지라는 말과 함께 맛볼 수 있는 오징어 요리가 몇 가지 더 나왔다. 비슷한 듯 다른 오징어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시간은 특별히 들어간 일정이 없는 자유시간. 하코다테의 아침 수산시장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하코다테의 오징어 소면을 맛보기로 하였다.

아침시장을 가기 위해 전철을 타러 갔다. 하코다테에는 노면전차가 아직 있어 중앙 차로 도로의 한 가운데를 노면전차(市電)이 다닌다. 이 전차를 타고 아침시장으로 향하던 전차 안에서 김원중 씨는 아주 귀여운 꼬마 옆에 앉게 되었다. 말을 붙여도 아이는 부끄러운 듯 엄마의 품으로만 파고들었다. 표정을 보면 싫지 않은 듯한데, 참 부끄러운 모양.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둘은 친구가 되고 있었다. 아이의 반응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담고 있었으나 헤어질 때쯤 되자 아이는 작은 선물을 김원중 씨에게 건네주며 아쉬움을 달랬다. 예쁜 풍경이었다. 아침시장에는 많은 게와 생선들, 그리고 멜론이 가판대를 메우고 있었다. 정말 커다란 게들, 북방어장에서 잡혔을 듯한 커다란 싱싱한 생선들, 그리고 수산 가공품들, 여기에 홋카이도의 특산물 중 하나라는 멜론이 가게마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음식점에 들러 오징어 소면의 맛을 보았다. 우리가 먹는 방식으로 보면 그것은 우리가 오징어 회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다만 오징어 소면은 오징어를 참 얌전하고도 예쁘게 잘라 접시에 다소곳하게 올려놓은 간장 맛 소스(겨자첨가)와 함께 곁들인 음식이었다. 싱싱한 오징어 맛은 그만이었다. 오징어를 좋아하는 김원중 씨는 오징어 소면을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였다.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연어를 무척 좋아하여 맛을 보았는데 이 역시 싱싱함을 자랑하는 맛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입맛이 다져진다.

다음 행선지는 일본의 메이지(明治) 정부가 구 막부군을 마지막으로 제압하게 되는 성곽지, 오능곽(五稜郭=고료카쿠)이었다.
노면전차에 올라 오능곽으로 향하던 중, 우리와 동행하고 있던 우에다 가즈시게 씨가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연의 극치. 사토 미츠오 씨. 하코다테 음감의 전 대표이자 지금은 일본-베트남 우호협회 상임이사 및 하코다테 지부 대표를 지내시는 70대의 어르신이었다. 우리 일행과도 반갑게 인! 사를 나누고 이번 공연의 성공을 빌어주셨다. 그리고 시간이 있으니 오능곽을 직접 안내해 주시겠다고 하였다.

이런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능곽을 뒤로 하고 점심식사 장소를 찾아 거리로 나와 메밀국수와 게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발견, 들어갔다. 가시를 가지고 있는 게에게 수차례 공격을 받아가며 열심히 살을 발라먹었다. 손끝이 아플 정도로 게는 가시로 반항을 했지만 우린 자랑스럽게 게살을 발라냈다. 의외로 게와 함께 먹는 메밀국수의 맛이 괜찮았다.

식사가 끝나고, 도착한 뒤 하코다테의 무엇을 보았는지가 화제에 올랐다. 김원중 씨는 하코다테 야마에 올라 만난 야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전날의 감상을 시로 옮겨 보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듣고 있던 사토 씨는 운율상 하이쿠로 옮겨 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며 도움을 주셨다. 사토 씨는 하이쿠 짓기가 취미이기도 하다고 한다.

구름 속 きりの中
하코다테 야경 函館の夜景 마음으로 보다 心で見る

와우, 예술가들의 감성은 역시 다른 것인가 보다. 감탄, 또 감탄. 순간을 포착하여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하이쿠가 되니.
김원중 씨는 이 하이쿠를 무대에서 직접 낭송을 하였다. 그리고 짧은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렀다. 객석의 반응은 그야말로 함성과 함께 쏟아지는 박수. 감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토 씨와 헤어져 공연을 위한 사전 모임이 있을 하코다테 음감의 사무실로 향하였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일본 공연 팀 들이 도착하였다. 코카리나 연주자인 구로사카 마사후미(黑坂正文) 씨, 이름이 길어 김원중 씨는 이 분을 미스터 구로라고 부른다. 당사자도 양해해 주셨다. 그리고 보컬인 야구치 가네미(矢口周美) 씨,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후쿠자와 다츠로(福澤達郞) 씨, 김원중 씨는 당사자의 양해를 얻어 이 분을 미스터 후쿠라고 부른다. 인사를 나눈 뒤 미스터 구로 씨는 광주에서 몇 번 공연하신 적이 있다는 말을 하며 화제를 이끌었다. 이어서 중국 연주자 팀이 도착하였다. 지난해 “아시아의 바람”에서 공연을 함께 한 얼후 연주자 슈커(許可) 씨, 그리고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양금 연주자 왕문례(王文禮) 씨. 모두 모인 가운데 공연일정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나누었다. 이어서 저녁 교류회로 이어졌다. 음감 측에서 직접 손수 준비한 음식들로 마련된 저녁 교류회였는데, 이미 김원중 씨가 오징어 광이라는 소문이 났는지, 어김없이 오징어로 만든 요리가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 오지어 소면에 오징어 밥, 관자구이, 샐러드, 생선초밥, 돼지고기 찜요리, 튀김,,,,. 내일 공연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는 가운데 자리를 접었다.

2005년 07월 26일 화요일

 
 
 
 

< 일본 “아시아의 바람” in 하코다테 & 히메지 콘서트 (3)>

7월 5일(화) 첫 공연이 있는 날이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40분 정도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다음 리허설을 위해 공연장인 하코다테 시민회관(1500석 규모)으로 향하였다. 리허설을 통해 음향 이것저것을 확인하고 진행방식을 확인하면서 일본, 한국, 중국 공연 팀 모두 더욱 친숙해져갔다. 단지 리허설이었는데도, 김원중 씨의 노래에 일본팀은 물론 중국 연주자들, 음향실, 무대 관계자들 모두 눈빛이 빛났다. 리허설을 함께 한 일본팀 보컬 야구치 씨는 아주 뜨거운 박수와 함성을 보내주었다. ‘자, 기대하시라. 본방에서 보여질 김원중 씨의 무대를’. 감히 나는 속으로 남모를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본방. 역시, 김원중 씨의 카리스마는 이곳 하코다테에서도 통했다. 좌중을 압도하는 그의 목소리에 모두가 감동.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그들이지만, 분명 그들의 눈빛이 빛나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어진 사인회. 이번 공연에 맞추어 김원중 씨의 일본 첫 앨범 CD가 7월 7일에 정식 발매되지만, 이번 하코다테 공연에서 CD에 사인을 해주는 사인회를 가졌다. 몰려드는 사람들.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너무나 멋진 무대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정말 멋지세요.” 계속되는 관객들의 감격에 찬 반응들. 사인회 장소까지 이동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정도로 관객들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옆에는 나조차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가장 마지막까지 사인펜을 쥐고 사인을 계속하는 김원중 씨. ‘우리는 만나야 한다’ CD에 이렇게 사인을 해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열심히 연습한 일본어로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사인을 받는 사람들은 고개를 낮추어 귀 기울여 그의 일본어를 들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청하였다. 정말 감동적인 한 장면이었다.

공연 둘째 날. 오후 5시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비가 오기는 하였으나 모처럼 하코다테의 대자연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어 하코다테에서 특급열차로 20분 북쪽으로 달려가면 만나게 되는 오오누마(! 大沼) 공원을 찾았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대호수를 앞에 두고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비구름 속에 모습을 감춘 화산 산을 보지 못한 채 빌려 탄 자전거로 그 일부만을 둘러본 채 발길을 돌려야 하였다. 김원중 씨의 말대로 하코다테는 한 번에 그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있었다. 꼭 다시 이곳을 찾길 바라는 하코다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나 할까?

둘째 날 공연. 어제보다 음향이 더욱 좋아졌다. 어제 공연이 끝나고 손을 좀 더 본 듯하다. 그래서 일까, 어제보다 김원중 씨의 공연은 더욱 관객을 끌어 들였다. 꽃을 심으리 그대 가슴에. 이 곡의 일부를 일본어로 부르니 더욱 관객과 가까워 질 수 있었고, 하코다테의 감흥을 담은 하이쿠 낭독과 노래, 어제 공연에서는 봄날은 간다를 불렀으나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여 이 날은 미국 포크송 가수 피토 시거의 Where have all the flower를 불러 박수와 함께 따라 부르는 관객도 있었다.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 이 곡이 가진 느낌을 관객들도 충분히 느끼는 듯. 이어진 卵《퍼포먼스. 열심히 함께 하는 관객들의 모습, 잘 안되니 멋적어 하며 웃기도, 그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 그들 안의 평화를 찾은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진 직녀에게. 언제나 그렇듯 이 노래를 김원중 씨가 부르면 관객석뿐만 아니라 공연장 전체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간주 부분에서 김원중 씨가 일본어로 전하는 메시지는 그 분위기를 한층 고무시킨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우뢰와 같은 박수. 식상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달리 어찌 표현할지, 그건 정말 우뢰와 같은 박수였다.

** 다함께 아침이슬을 부르는 모습...**

이어지는 팬 사인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감격어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원중 씨가 가만히 안아주었다. 아, 아주머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그리고 주루룩.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꼭 다시 하코다테에서 공연해 주세요.” “다음 공연도 꼭 보러 가겠습니다.” “좋은 메시지 감사합니다.” 어제보다 더 많은 관객이 온 날이다. 그만큼 CD 사인회도 길沮낫 다른 연주자들은 철수했지만 김원중 씨는 여전히 남아 CD에 사인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인이 끝났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관객이 많았다. 나 역시 김원중 씨에게 CD에 사인을 부탁하였다. 통역으로 참여하여 멋진 무대를 함께 만들어냈다는 성취감과 노래를 통해 굳이 언어가 아니라도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큰 경험을 하게 해준 점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공연을 마치고 모든 출연자가 함께 자리한 뒷 풀이자리가 호텔 근처 한 레스토랑에서 있었다. 그 레스토랑의 주인도 둘째 날 공연을 본 분이어서 김원중 씨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일부러 인사를 하러 나와 주었다. 그리고 대단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축하하는 건배가 이어졌고 각자의 감상을 듣는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연주자는 역시 김원중 씨였다. 저명한 지식인을 많이 낳은 독일이 히틀러 한 사람을 막아내지 못하였다는 멘트와 함께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을 남기며 손가락 퍼포먼스로 자리를 정리하였다.

하코다테에 도착한 날에 만났던 그 햇살과 바람을 다시 느껴보지는 못한 채 비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었으나 이 곳에 남겨놓고 가는 “바람”은 우리가 떠난 자리에 그 햇살과 바람을 다시 돌려주리라 믿어 본다. 다음을 기약하며.

2005년 07월 27일 수요일

 
 
 
 

[공연기] 김원중 일본 공연기 (4)

7월 7일(목). 이 날은 일본에서 칠석이라 하여 축하하는 날이다. 그리고 김원중 씨의 일본 첫 앨범 CD가 공식 발매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 있는 날에 김원중 씨는 다시 히메지 단독 콘서트를 위해 긴 여정에 올라야 하였다.

하코다테에서 도쿄 하네다까지 1시간 반, 다시 하네다에서 오사카 이타미 공항까지 1시간, 다시 히메지까지 2시간정도 차를 타고 이동. 아침 8시 40분 하코다테발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여 하네다를 거쳐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 도착한 것이 12시. 하네다 공항에서 우에다 가즈시게 씨를 대신하여 일본 우타고에의 국제교류 담당자이신, “삶, 뜻, 소리” 멤버들이 아버지처럼 따르며 존경하는 고바야시 히카루(小林光) 씨와 합류하여 함께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 도착하였다. 히메지 노음(勞音)의 여러분이 마중을 나와 주셨다. 멋진 프랭카드와 예쁜 꽃장식과 함께. 히메지에서 여기까지 2시간을 달려 나와주신 것이다. 그저 감사, 감사.

3시 30분부터 있을 리허설 전에, 히메지에서 가까운 효고현(兵庫縣) 서쪽 아이오시(相生市)에있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중 일본에 강제 징용되어 아이오의 조선소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 가운데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한 채 일본에서 숨을 거둔 무연고자 공동묘지를 방문하기 위해 다시 2시간을 달렸다. 1995년 11월 1일 한국 민단과 조선 총련 그리고 양심적인 일본 시민이 협력하여 묘지 건설에 착수, 이 날 완성되었다고 한다. 매년 11월 첫째 주 일요일에 이 곳에서는 이 곳에 잠든 분들을 위한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묘지.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어느새 가슴에 내려앉은 돌덩이는 나를 짓눌렀다. 아팠다. 너무 아프니 말이 나오질 않았다. 김원중 씨는 이 곳에 잠든 분들에게 노래 “봉선화(봉숭아)”를 들려드렸다. 가슴에 있던 돌덩이는 어느새 내 눈을 타고 올라와 눈물로 녹아 내렸다. 자리를 함께 한 히메지 노음의 여러분, 고바야시 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전쟁은 그렇게 우리를 여전히 아프게 하고 눈물로서 다시 한 번 그 불필요성을 역설한다.

히메지 캬스파홀(300석 규모). 김원중 씨의 히메지 단독 콘서트가 열린 공연장이다. 대기실을 들어서는 순간, 어젯밤에 그 꽃봉우리를 터뜨렸다는 무궁화가 일행을 반겨주었다. 그리고 정성껏 마련된 샌드위치, 과일, 직접 구운 빵, 아이스크림, 커피, 음료수. 정말 푸짐하였다.

잠시 공연 일정을 상의한 다음 리허설에 들어갔다. 음향 조절에 시간이 좀 걸렸다. 이 날 준비한 곡은 본방에서 8곡, 앵콜 곡으로 2곡. 하코다테 공연에서 부른 곡에 푸른 하늘을 본지도 참 오래되었지. 애기똥풀 꽃이 하는 말. 바위섬. 눈물꽃. 그리고 함께 부를 소원(네가이)과 같은 곡이 더하여졌다. 하코다테의 하이쿠 낭독 대신에 히메지 공연에서는 오후에 다녀온 아이오의 묘지를 떠올리며 김원중 씨가 짧은 시를 지어 낭독하였다.

아이고 아이오
조선공원(造船工員) 조선인
히메지 노음에 감사

김원중 씨의 예술적 감각은 어느 장소 어느 때에나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장면이었다.
히메지 노음의 여러분들과 함께 콘서트 무대가 꾸며졌고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콘서트에 앞서 10여분에 걸친 히메지 노음의 “신사쿠라” 연주와 오키나와 무용 “에이샤”는 감동이었다. 공연을 앞 둔 김원중 씨로서는 많이 부담될 수도 있었지만 그 공연을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는 모습이어서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원중 씨의 예정된 콘서트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 객석의 반응은 뜨거워져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공연은 예정 시간을 30분 넘긴 9시쯤에 끝이 났다. 모두들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진 CD 사인회. 오늘밤 중으로 과연 끝날까 싶게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정성껏 CD에 사인을 해주는 김원중 씨. 감격 어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힘을 얻어 갑니다.” “꼭 다시 와주세요” “감동하였습니다.” 인사말들이 이어졌다. 재일동포인 가족들이 왔다. 재일동포 3세라고 한다. 무척 감격하여 들뜬 표정이 역력하였다. 김원중 씨의 노래가 그들에게 위로와 함께 자부심으로 자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는 정말 힘이 있나보다. CD 사인회를 마친 시간이 대략 9시 40분쯤! . 저녁 교류회 장소로 이동하였다. 일본식 중화 요리 집에서 교류회가 있었다. 도착해 보니 40여명의 히메지 노음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에는 히메지 노음 멤버는 아니지만 자리를 함께 한 분들도 있었고 “소원(네가이)”를 함께 불러준 한국 유학생도 재일동포 한국어 선생님과 함께 자리해 있었으며, 오늘 김원중 씨의 팬이 되었다며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 그 노래야말로 최고라는 말을 연발하는 아저씨도 계셨다. 모두들 감동이 가시지 않은 채 들떠있었다. 긴긴 인사말들이 이어지고 히메지 노음 안의 “하나코마”라는 전통무용 전수단의 공연이 이어졌다. 내용은 우리나라의 시화호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일본에서도 있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어민들의 모습을 극화한 것이었다. 열심히 준비한 과정이 느껴졌으며 극에 사용된 악기 중에서는 광주 5.18재단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꽹과리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시간은 밤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헤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졌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김원중 씨의 인사말과 손가락 퍼포먼스로 자리를 정리하였다.

아주 아주 긴 하루가 저물었다. 마지막에 이르러선 나 자신이 어느 나라 말로 말을 하고 있는 지조차 모를 정도로 말의 홍수 속에 있던 그런 날이었다. 몸과 머리는 말할 수 없이 피곤하였지만 마음에 부는 따뜻한 바람은 이번 “바람”이 내게 남겨준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2005년 07월 28일 목요일

 
 
 
 

[공연기] 김원중의 일본 공연 이야기.. 마지막...(5)

일본 공연 마지막날 이야기입니다... **

다음날, 귀국하는 날이다. 오전 중에 히메지의 세계문화유산인 히메지성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호텔에 10여명의 히메지 노음 분들이 와 계신 게 아닌가! 아니, 오늘도 출근을 하지 않은 건지? 김원중 씨는 매우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았다.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년 중 20일은 자유롭게 원하는 날짜에 휴가를 사용하면 된다고 하면서. 히메지 성 견학뿐만 아니라 오사카 간사이공항까지 오오타가키 기요지 씨, 우에다 마도카 씨, 가스야 히사코 씨, 니시오카 마키 씨 네 분이 함께 해주셨다. 이 분들은 아마도 김원중 씨의 왕 팬이 되어 버린 분들 같았다.

히메지성 견학이 끝나고 들른 “갓파야”라고 하는 일본 가정요리 식당은 정말 조그맣고 허름하였지만 음식 맛은 시쳇말로 짱 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식당의 주인은 히메지 노음 분들과 교류가 많은분으로 일본의 대금이라고 할 수 있는 샤쿠하쿠의 연주자이기도 하였다. 식사가 끝난 다음 2층 내실로 자리를 옮기자 즉흥 콘서트가 열렸다. 샤쿠하쿠의 반주에 맞춘 김원중 씨의 멋진 하모니. 음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음악은 작은 식당의 2층 방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음악은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라 생활 속에 있는 삶 속에 있는 산소와도 같은 그런 것이었다.

작은 음악회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공항을 향하는 차에 올랐다. 아쉬움 속에 몇몇 분들과 작별을 하고 몇몇 분들은 함께 공항까지 동행하였다. 공항에서의 작별도 길어졌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위층 유리벽 저쪽에서 히메지 노음의 네 분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움찔! 환대에 정말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다.

음악을 통한 “아시아의 바람”이 이번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불게 된다. 다음 달 8월 14일(일) 광복 60주년 기념 전야제 공연에서 우리는 다시 이들의 바람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일본의 합창단 100여명이 참가하게 될 이번 서울에서 열릴 “아시아의 바람”. 이번에 서울에서 불게 될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2005년 07월 29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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